가장 최근에 나온 『녹나무의 파수꾼』을 비롯하여 웬만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히트작들은 다 읽어보았지만, 『라플라스의 마녀』와 더불어 이 『용의자 X의 헌신』을 최고로 꼽고 싶다. 짧게 요약하여 리뷰하자면, 추리소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반전 요소는 물론이고, 그 반전 요소의 근거를 채워주는 복선과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신념이 잘 드러나는 좋은 소설이었다.
(스포)
이야기는 범인을 추적하는 일반 추리소설과는 반대로 진행된다. 극 초반 사건이 벌어지면서 독자들은 시작부터진범을 알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인공 격인 이시가미 데츠야는 여러 트릭을 통해 경찰 측의 추적을 따돌리려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경찰 측이 앞의 트릭들을 하나하나 밝혀냄에 따라 쾌감을 느끼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주인공의 의도임을 알게 된다.
작가의 다른 작품 『라플라스의 마녀』에서와 비슷하게도 일반적으로 악역이 되었어야 할 살인자들은 오히려 기구한 사연을 가지거나 확연한 근거가 있어 독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옹호하며 범인의 편에 서게 된다. 반대로 본인의 임무에 충실한 경찰들이 악역으로 느껴지냐 하면, 또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특별했다. 경찰들 또한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아닌, 인간적인 인물들로 느껴지며 그저 이번 사건만은 실수로라도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기를 바라게 될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작과 동시에 사망한 한 사람을 제외하면) 이야기 전체적으로 악역이 전무하다. 허수아비처럼 세워둔 악역을 두들겨패며 극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쉬운 방식을 포기하면서도 다른 방법으로 재미를 뽑아내는 작가 고유의 방식이 여실히 느껴졌는데, 작가도 이 방식이 괜찮다는 것을 느꼈는지 이미 리뷰한 『라플라스의 마녀』 뿐만 아니라 아직 리뷰하지 않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녹나무의 파수꾼』에서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이야기는 평면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실감 또한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모두 영화화 혹은 뮤지컬화가 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렇게 기본적인 이야기 줄기가 탄탄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제목인 『용의자 X의 헌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다가오게 된다. 주인공은 헌신의 대상을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빠져나갈 길을 스스로 제거하기도 하는데, 막바지에 헌신의 대상을 위해 스토커 연기를 하며 자신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고 대상의 안녕을 비는 모습에서 작가가 말하는 "헌신"이 단순한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상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작중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이성적이던 주인공의 동기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감성적인 영역인 "헌신"이었다는 점 또한 모순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는 헌신에 관한 주제의 충실성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내용 또한 수준급으로 재미있다. 반전을 지나 또 다른 반전이 계속해서 나타나지만 이러한 진행이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감탄하게 되는데, 짧은 분량 안에 납득할만한 재미있고 충격적인 반전을 계속 집어넣는다는 것이 작가의 필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주제의 충실성과 더불어 왜 이 작품이 여러 상을 수상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씁쓸한 결말과 더불어, 책의 제목이 작품의 주제를 잘 관통하는, 제목이 특히나 깊이 남는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