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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마이너리티 리포트

by swswswswswsw 2022. 1. 23.

PKD 작, 조호근 옮김. 폴라북스

SF 마니아가 아니고서야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책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에 대해서는 다들 한번 쯤 들어보았을 것이고, 앞서의 책이 그 영화의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또한 그 책의 작가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견없이 필립.K.딕이 SF의 거장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다.

 도서관에서 처음 책을 집어든 이유는 제목의 친숙함이었다.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본 적은 없지만, 당시 재미있게 보던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패러디를 했을 만큼 대히트한 작품이었기에 기억 한켠에 제목이 남아 있었고, 영화가 히트했으니 원작이 지뢰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예상대로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예상과는 다르게 여러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이었다. 짧게는 5분이면 읽을 분량에서 길게는 2-30분정도 소요되는 단편들이었는데, 그 중 마지막이 바로 그 유명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다. 내 경우 SF를 깊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닥터후" 나 "인터스텔라", "마션"과 같이 유명한 작품들은 재미있게 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런 경험을 토대로 본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내가 익히 보아왔던 환상과 희망이 깔려있는 판타지(Fantasy) 보다는 그저 우주(Space)를 배경으로 채택한 사회비판,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이 강한 색다른 느낌의 SF였다. 단편들을 읽는 내내 조지 오웰의 『1984』 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되고 음울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느껴졌는데, 이야기들이 주로 채택한 전쟁과 통제된 사회와 같은 배경들이 이런 분위기를 한층 격화시킨다. 

 비록 많은 단편들 중 한 이야기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거장이 영화화하여 성공을 거두었던 만큼, 마이너리티 리포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단편들이 참신한 아이디어와 탄탄한 배경들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완벽한 재료들을 통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재미 없을리가 없었고, 그 뿐만 아니라 작품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주제와 철학들도 깊이있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미래의 독자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미래의 모습에 대한 약간의 현실감 부족"이 있겠다. 예시를 들자면, 여러 단편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버튼을 누르면 요리가 나오는 스토브 따위가 있다. 하지만 이는 취향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니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이러한 과거의 공상적 면모가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보다 크게 느낀 단점은 주제에서 오는 피로이다. 책의 대부분의 단편들이 우울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이 때문에 계속해서 단편을 읽는 독자는 필연적으로 지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단편집 형식이 가진 불가피한 문제점이지만, 이 점이 책을 계속해서 읽고싶은 마음을 확 줄였다는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

 배경 이야기를 하자면, 앞서 말한 전쟁이나 통제된 사회와 같은 이야기의 배경들로부터 글이 쓰여진 1950년대의 시대상 또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쌓이게 된 전쟁에 대한 피로감과 그로 인해 생겼을 반전주의적 색채가 느껴지는 글들이 있었고, 본격적인 냉전에 돌입하며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자연스레 생겨났을 소련식 전체주의적, 통제적인 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물씬 느껴지는 글도 있었다. 부정적인 점만 있지는 않았다. 여러 단편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식민행성, 자가용 로켓과 같은 개념들은 냉전시대 여러 사람들에게 우주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었을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이 작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요약하자면, 비단 재미만을 가지고 있는 책이 아니라 작품이 지어진 당시의 시대상과 그 시대 안에서 작가가 느꼈을 모순과 철학을 모두 읽어볼 수 있는 수작이었다. 정말 짧은 분량 안에 생소한 세계에 대한 배경설명과 더불어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모두 엮어내며 재미와 자신의 철학까지 녹여낸 작가가 존경스럽기까지 한 소설들이었다.

 

 

 추가적으로 내용 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다. 본 단편집의 구성이, <단편의 제목- 그 단편의 간단한 평론 - 이야기> 의 반복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단편의 제목을 읽게 된 후, 자동적으로 바로 다음 내용인 평론에 눈이 가게 되는데 이 평론이라는 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 전체 내용을 요약하고 평가하는 방식이며, 다시 말하자면, 내가 읽을 이야기의 큰 스포일러를 담고 있게 된다. 스포일러 없이 읽는 것이 당연히 더욱 재미있기에 제목을 읽고 애써 평론을 무시하며 바로 내용을 읽기 시작해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다시 평론을 읽는 방법으로 읽게 되었지만, 어째서 출판사에서 이러한 구성을 채택했는지, 책의 앞뒤를 팔랑팔랑 넘겨다니며 많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장점이 있기에 선택한 구성이겠지만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더불어, 책에 필기해가며 읽는 습관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 대신 자신이 구입한 책에만 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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