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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

by swswswswswsw 2022. 3. 18.

박근혜 작, 유영하 엮음. 가로세로연구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씨가 옥중 받았던 편지들과, 그에 대한 답신을 연도별로(2017~2020) 모아 놓은 서적이다. 사정 상 받은 편지들에 대해 답신을 보내지 못했기에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고 한다... 기에는 15,000원이라는 정가가 부담스러웠다.

 

 앞서 설명한대로 투옥 중인 글쓴이에게 여러 사람이 보낸 편지가 주된 내용인데,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아무래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된 발송자이기 때문에 투옥 중인 글쓴이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 외에도 글쓴이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치적 혹은 인간적으로 그리워하는 내용이 있으며, 각 연도별로 화제가 됐었던 정치적 사건들을 비판하는 내용들이 보인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일반인들이 보낸 편지들이지만 읽으며 느낀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을 몇 개 서술하자면, 상대적으로 읍/면/리의 시골에서 보낸 편지가 많았다는 점과, 주로 어린 손자가 있을만한 나이의 남자 어르신이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있었다.

 또한, 앞서 말하였듯이 글 간간히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편지들이 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답신을 볼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회적, 정치적 면모에 대해 그리워하는 편지에 대한 답신은 해당 측면에 대한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는 반면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회상은 개인적인 경험도 꺼내어가며 같이 공감해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추측하기로는 정치적인 모습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의도인 것 같지만, 반대로 책 마지막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사진을 모아놓은 챕터에서는 왜인지 대부분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한 사진으로 장식하였다.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정해져있지 않은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었고, 내가 정치에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흥미롭지 않았던 면도 있었겠지만 이 책이 유달리 재미없는 이유에는 다른 문제점들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책의 구성이 매우 단조롭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걱정/연도별 정치적 사건들 비판/박정희 전 대통령 회상이라는 세 가지 패턴만으로 300쪽의 분량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책을 아무리 읽어도 새로운 내용이 보이지 않으며, 바꿔 말하면 책이 지루하다. 300쪽이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겨우 세 패턴의 단조로운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제일 처음인 17년도 부분의 편지만 다 읽으면 나머지 18~20년도의 편지들은 각 연도별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소수의 편지들만 제외하면 슬쩍 훑어보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 같은 내용이다. 심지어 편지를 주고받는 양측 모두 작가가 아니다 보니 필력이 많이 부족해서 더 재미있게 서술할 수 있었을 똑같은 문장도 (마치 내 독후감과 같이) 재미없고 지루하게 작성되어 있어 지루함이 배가 된다.

 둘째로, 각 편지들의 주장이 상충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대로 보낸 편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지만 각 편지들이 주장하는 바가 서로 반대의 입장이라 독자가 보기에 갈피를 잡기 어렵고 혼란스럽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누군가는 북한에 강경대응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을 칭찬하며 현 정부의 유화적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북한에 직접 방문했던 박 전 대통령의 유화적인 모습을 칭찬하는 글을 썼고, 반민주적이며 시민 독재적인 현 상황에서 희생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글을 보냈다.

 셋째로, 부정적인 감정이 글 전반적으로 깃들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쓴이가 억울하게 옥살이중이라는 생각에 편지를 부쳤고, 그 외에도 현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에 편지를 부쳤기 때문에 책 속 감정들이 모두 울분에 차있고 화가 나 있는 부정적인 상태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게 된 독자들은 책을 읽다가 결국 지쳐버리고 만다.

 주제넘는 생각이지만 약간의 개선방안을 첨언하자면, 글 사이사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일기나 사회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논평을 써 놓거나 했었다면 마치 시리얼에 섞여있는 딸기처럼 글 사이사이마다 책의 분위기를 환기하고, 독자가 한 숨 쉬어갈 수 있는 부분이 생겨 더욱 생기 있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너무 비판만 이어간 것 같아 약간의 옹호로 글을 마쳐보고 싶다. 나는 약 10년 전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을 즐겨 했었는데, 10년도 더 흐른 지금도 그때 그 게임의 OST를 들으면 당시의 기억이 나며 즐거운 추억에 잠기곤 한다. 만약 10년 전 같은 게임을 즐겨했던 사람들의 회상록을 모아 책을 엮는다면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내용 투성이인 재미없는 책이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시절을 즐겁게 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해당 인물에 대해 추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기억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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