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깊게 남은 소설을 읽게 되었다. 뇌사 상태인 딸이 진정으로 "죽었는가"에 대한 인물들의 생각 차이를 중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진정한 죽음이 무엇인가 라는 평소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책. 딸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어머니, 현실적으로 사망 상태임을 인정하는 주변 인물,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바뀌는 또 다른 등장인물 모두의 입장이 이해되기에, 딸의 육체적인 생기만을 붙여놓고 결정을 미루게 되는 주인공들의 심정이 무척 공감된다.
> 스포일러
기술은 있지만 기적은 없다. 여러 판타지적 작품을 써 온 작가답게, 혹은 수많은 히트작을 써내려 간 작가답게 뇌사 상태인 딸이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이도록 돕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여러 기술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듯 딸이 기적처럼 일어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딸의 죽음을 부정하던 어머니까지, 사실인지 자기 위안인지 알 수 없는 새벽녘 딸과의 작별인사를 통해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결국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머니의 광기가 극에 달한 아들의 생일파티 장면이었다. 독자로서 이미 딸이 죽었다는 것을 내심 인정하고, 어머니의 행동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지던 시점의 이야기. 하지만 어머니의 "내가 딸을 해쳐 심장을 멎게 만든다면, 이는 살인인가?" 하는 질문에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게 된다. 그간 이해되지 않던 어머니의 마음을 한 장 만에 납득하게 만들어 준 장면. 올해 접한 매체를 통틀어 최고의 한 장을 뽑는다면 선정하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씬이었다.
[편지]에서 느꼈던 바와 같이,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주변 인물들의 상황 변화가 매우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드러나 몰입감을 더한 작품이다.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가며 주변 인물들이 가진 동정심은 점차 희석되어 가고,
딸을 정성으로 간병하던 어머니의 모성애는 영화 "마더"에서 그렇듯 점차 광기로 변해간다. 그럼에도, 딸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워 줄 사람이 어머니뿐만이라는 점에서 어머니의 절박함이 이해되고, 안타까움이 더욱 더해진다.
결코 행복한 장면이 등장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고난을 이겨내는 하나하나의 과정에서 등장인물과 마찬가지로 독자 또한 소박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제는 슬슬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하는 마음까지 들게 되는, 글을 읽는 3시간 동안 마치 글 속에서 3년을 함께 보내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난 책이었다.
너무 재미있게 읽어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려 했지만, 읽지 않고서는 책의 분위기를 절반도 알기 힘들다. 감동적이거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그냥 한 번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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