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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편지

by swswswswswsw 2024. 4. 28.

히가시노 게이고 작, 권일영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가족이 겪는 일을 다룬 특이한 주제. 

 

읽는 내내 주인공의 꼬여가는 인생에 답답함과 우울함이 가득했다. 강도살인으로 복역하는 형을 둔 주인공의 주변 인물은, 대부분의 싸구려 소설이 그렇듯 악의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현실 속 사람들처럼 나름의 배려와 이해심을 가지고 주인공을 대한다. 역설적으로 그런 태도에서 느껴지는 현실과 역차별에 주인공은 점점 무너지고, 한 번씩 생겨나는 조그마한 희망마저 주인공 형의 존재로 인해 꺾여간다.

동시에 주인공과 형의 관계도 변해간다. 주인공의 학자금 마련을 위해 형이 벌인 강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살인. 그렇기에 처음 주인공은 형에게 원망 반 미안함 반의 감정을 지닌다. 주변의 조언으로 어느 정도 관계가 회복되나 싶다가도, 형으로 인해 겪는 고난으로 관계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는  형이 달마다 보내는 편지를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답신을 보내던 좋은 관계에서, 편지를 읽지도 않고 찢어버리며, 나중에는 바뀐 주소지를 숨기며 관계의 단절을 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글이 관통하는 주제는 Imagine이다. 차별이 없는 세상을 노래하지만, 이상과 다를 수 밖에 없던 현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잃지 않는 희망이 글 전반에 걸쳐 녹아있다.

 

글의 구성 또한 베테랑 작가답게 치밀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부분은 주인공 형제 부모의 부재이다. 가해자의 가족을 다루는 소설이기에, 가족의 수가 늘어날수록 글의 진행에 있어 몇 배의 변수가 발생한다. 이렇게 글이 복잡하고 난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작가는 주인공을 일찌감치 조실부모한 가족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글이 간결해지고 주인공에게 몰입되는 효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이에 더해, 주인공 부모의 사망을 통해 일가의 가난함을 납득시키고, 어머니의 바람을 통해 주인공이 그토록 대학에 집착했던 합당한 근거를 마련해 주기까지 세 가지 효과를 얻었다. 어머니에 대한 형제의 상반된 추억을 통해 이야기의 풍부함을 가함은 덤이다.

또한, 처음에는 형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음에도, 동생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형의 상황은 오직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만 드러난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초반 형의 시점에서 형에 대한 배경지식과 당위성을 모두 설명해 둔다. 이어 진행되는 동생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동생의 시점에서 편지를 읽으며 형의 생활을 알게 되는데, 이를 통해 자연스레 동생의 상황에 이입하며 소설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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