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책을 고를 때 첫째로는 그 책 제목의 익숙함을 먼저 고려한다. 익숙한 제목일수록 언젠가 인기있었던 책일 확률이 높고, 인기있는 책이면 보통 중간 이상은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경우에는 익숙한 작가를 고려한다.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대표적이고, 김영하 작가님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임이 보장되어 언제나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첫 번째 기준에 걸려들어 읽게 된 책이다. 작가님과는 초면이지만 워낙 많이 들어 본 제목이라 긴 내용에도 불구하고 큰 맘 먹고 읽기로 결정하였다.
그냥 읽는다면 무척 지루한 소설일 것임에 분명했다. 간단한 감상을 표하자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중얼중얼 주워섬기는 말들을 죽 늘어놓은 듯한 글줄의 연속으로, 어느 고양이의 시점에서 그 일생을 담고 있다. 내용간에 큰 긴장이나 위험은 없었지만 사소한 사건들이 여럿 들어있어 글의 재미가 떨어지지 않게 잡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사건들마저 아무 긴장 없이 볼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이기에, 무척 기분 좋은 나른함이 주된 분위기로 작용하는 책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원래 잡지 연재글이었던 토막글들을 하나로 합친 때문인지 글의 챕터별로 따로 나눠 보아도 크게 문제가 없는 옴니버스 비슷한 구성을 채택하였다는 것, 그럼에도 큰 줄기에서의 이야기는 꾸준히 흘러간다는 것이 있었다. 또한, 여느 주인공들처럼 극적인 탄생/성장/죽음을 겪지 않고, 평범하디 평범한 일생을 사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채택하였다는 점도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이었다.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고양이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상이었다. 현재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등 고양이의 까칠하고 알 수 없는 성격들이 많이들 알려져 있지만, 놀랍게도 100년 전 글인 이 책에서도 마치 고양이 자신이 쓴 글인 양 고양이의 성격에 딱 맞는 엉뚱한 생각과 행동들을 골라 하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일단 책을 고르면, 그 책에 대한 외부 정보를 모조리 차단하고 읽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읽기 전 도움이 되는 사전지식이 있다던가 읽은 후 스토리를 알기 쉽게 요약 설명해주는 글이 있다던가 하더라도 최대한 피해가며 내가 읽은 책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이 책의 경우 백년도 더 전에, 심지어는 일본에서 쓰여졌기에 굉장히 오래된 말투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사어들을 다량 구사한다. 따라서 나처럼 사전지식을 일부러 배제하고 읽는다면 끝까지 내용의 반절은 이게 무슨 말인지 헷갈리며 읽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을 통해 책을 읽는다면 알 수 없는 문자들의 뻘 속에서 가끔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더욱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